선택
내쉬균형이론은 정보가 차단되고 여러 상황이 동시에 발생할 때 상대의 전략을 전제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난을 좋아하던 법정스님은 어느새 그 난에 집착하게 되었음을 알고, 그 원인이 된 난을 멀리하게 되어 비로소 난을 통해 무소유를 알았다고 한다. 가치나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나는 소화되지 않은 정보들속에서 또 하루를 보낼 뿐이다. 대다수의 나는 나의 선택에 의해 타인과 집단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 즉, 모든 행위들의 선택들이 만들어낸 발자취인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의한 '인과 율'의 산물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각하거나 인식못하는 현실에 속해 있고, 이는 생각에 관한 생각 문제이기도 하다. 저 마다의 우물을 파고 그 만큼의 세상속을 살아갈 뿐, 늘 그렇듯 그 그릇 만큼의 틀과 삶 속에서 나와 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을 깨우는, 혹은 잠에서 깨어남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에게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극히 제한된 자들의 몫일 뿐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쾌락적이고 복제, 아류의 정보들이 원본인체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진실을 왜곡하는 지금의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나의 기억은 식어버린지 이미 오래 되어 버렸다. "법정스님에게 난은 무엇이었을까?" 존재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은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고, 소유욕은 집착하게 만든다. 이내 실증내기도 하지만, 늘 소유인채로, 혹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지는 것이다. 아이가 아기임을 알지 못한 때에도, 아이가 아이였을 때에도 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을 때에도 변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속한 평범하고 진부한 얘기들이다. 친구에게 줌으로 해서 집착과 소유를 벗어 버릴 수 있었으며, 난도 지킬 수 있었다. 집착과 소유도 같이 받게 되었을 까? 법정스님의 몫은 이제 친구가 헤쳐나갈 몫으로 남게 되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니가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