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요구
무더운 뙤약볕아래 흐르는 땀이 귓볼을 지나 뒷덜미와 안경사이로 흘러 콧잔등을 적셔주는 상쾌함은 어느땐가부터 풀려버린 외꺼풀을 가지게 된 내 눈을 따갑게 한다.
도착했을 즈음 시야에 들어오는 HP 대리점의 굳게 잠겨 놓은 문은 귀찮았던 비소유에 대한 불편함을 지닌 채,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 불찰을 자꾸 되뇌이게 만든다.
나름의 최선은 대리점 앞에 프린터를 놓은 후 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내보이는 행동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들이 드문 지나는 곳이라 달리 선택의 폭은 많지가 않았다.
다소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앞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가게가 닫혀 있으니 전화 한 번만 해 달라고 했더니, 기분 나쁜듯이 '싫은데요.' 하며 거절하는데 하얀 이어폰 줄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길가던 길에 방해되었던 모양이라는 생각도 잠시 내가 가지지 않은 것으로 인해 그런 태도를 보지않아도 되었을 기분나쁨을 경험하게 되는 아쉬움이 나를 아니 그 사람을 귀찮게 했을지도 모른다.
걸음을 같이하던 2인의 모녀에게 부탁해 대리점측과의 폰 연결 후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인터넷으로 위치를 갈무리한 후 찾은 곳은 이사간 듯, 몇 블록 떨어진 곳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근처에서 빙빙돌며 무거운 프린터를 들고 다니던 나는 눈에 보이는 경찰서에 프린터를 잠시 맡겼다.
이내 찾은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새로운 위치를 프린트해주는 직원의 친절함과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차가운 물 한잔의 청량감은 어디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걸어가도 될 듯한 여유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받는 동안 물어물어서 오느라 몸에 밴 땀냄새가 어쩌면 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전의 상황과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생각에 잠긴다.
물론 손이 가벼울 때 화장실을 잠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잠시 뜬 것도 잊진 않았다.
여기서는 내가 기분 나쁜게 아니라 그 여자가 순간 기분 나빴는지 혹은, 거부해도 되는 정당함을 강조하려는 듯한 거침없는 행동이라 생각하며 한 일 일 수 있다.
내가 방해가 되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은 잠시 뒤 상황에서 유추 할 수가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가게에 들어서면서 맞이하고 대면하는 상황들 속에서 보이는 나와 그녀의 사뭇 상투적인 대화들은 미묘하게 이기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주인을 대신해 대리인의 자격으로 온 그녀에게 나의 프린터 확인점검 요구상항은 '많은 시간의 지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인식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에겐 시간이 많이 않았음을 일깨우기엔 충분했다.
양해를 구하는 시점과 그 대상에 대한 것들을 기술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가던 여자는 생까면 그 뿐이었던 조건이었지만, 두번째는 대가성에 대한 돈을 주고 확인하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상황기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나가는 여자에게 폰으로 가게에 전화를 해 달라는 나의 요구와 여자주인의 간단한 행동요구에 응한 대리인인에게 제 3의 행동요구를 하게된 나의 요구에 관한 내 생각 정리이다.
두 상황의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생각이나, 혹은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의도치 않은 '불쾌한 말걸기와 의도치 않은 행동요구'가 더해져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기분나쁘게 비쳐지는 모습으로 다가가져 버린것 같은 순간은 서먹한 공기에 메말라 가고 짧게 끝난 테스트시간은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흐르는 하루속에서 얼마전에 일어났던 상황과 비교하며 정리해야 함을 느낀다.
일주일전 토요일(음 6월 30일 토)은 외할아버지 기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시간에 맞혀 요즘 제를 올리고 있는 셋째이모집으로 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 전 즈음에 그 중 할 말 하던 둘째 이모부의 죽음 후엔 서로의 이야기가 부딪힘을 피하려 하는 모습들을 간직한 채 곪아가고 있었다.
물론 나의 몸 상태가 나쁜것으로 인해 나에겐 근 몇 년간 얘기하지 않은 세부적이고 많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돈 빌렸다던 혹은 빌린적 없다는 이모들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려던 얘기는 '이미 무감각해져 버린 후였다'는 표현과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으로 보여지곤 했다.
그 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겨진 자들의 불미스러운 뒤처리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각자의 이모들은 불미스러운 얘기를 뒤로한 채 명절에는 웃는 모습으로 대하곤 했었다.
의견을 공론화 안 시키고 각자 개인적으로 얘기했던 것은 무척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론 내가 지난일을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었던 그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애초에 불미스러운 움직임을 얘기하지 않은 우리들의 잘못과 나의 깊게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음이 조용히 넘어가자고 한 역할이 너무 큰 듯했다.
그 날 얘기중 나왔던 얘기들은 말로는 할 수없는 것을 뒤로 한 채 정리하려 한다.
첫 제사때 부터 늘 해오던 얘기들이지만 등장 배우들이 조금씩 달랐슴을 감안하여야 한다.
"이번 외할머니 3번의 기일을 보냈었기에 다음번에라도 합치는 게 맞다."
"때가 되면 절에 올리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인 나와 막내이모의 당연한 요구에 무조건 반대하며 "하는데 까지 한다.", "정당성이 있다."는 셋째이모와 아들인 사촌동생사이에 불건전한 언성이 오고 갔었다.
이모들은 약간의 양해를 원했었으며, 의견제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셋째 이모가 힘들고 무더운 여름에 하는 제와 금세 다가오는 명절과 시기가 겹치는 제를 외할머니 기일로 맞추자는 의견과 두 제사 모두 절에 올리자는 의견이었다.
내 입장은 양해를 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입장이였기 때문이었다.
빙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두 제사를 합치는 것이나, 절에 올리는 것에 찬성하냐 반대하냐" 입장을 분명히 제시하라 얘기를 했다.
이모들은 조금씩 생각해서 진행하자는 듯이 얘기하다 언성이 높아 지고 만다.
막내이모 : '제사를 왜 잡고 있냐, 제사 내려 놔라'
셋째이모 : '겨우 20만원 주면서 그러냐?'(물론 얼마전까진 비/공식적으로 합해 50정도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싫으면 참석 안하면 된다'는 급기야 사촌동생의 입에서 사람같지 않은 소리도 나왔다.
눈물과 눈물들로 얼룩져 정리될 수 없는 모순된 흥분속에서 부분적인 화해를 만들고 이모집을 나섰다.
'외할머니 보낸 후 불미스러웠던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고 해서 '그런 얘긴 하는게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다독거리다 그날을 정리했다.
어제 막내이모와 담소하던 중 "이제는 그 일을 얘기하기에는 늦은 것 같다."
만약 얘기하면 "다 지나고 나서 그 얘기를 왜 하냐" 하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올것 같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얘기하진 말고 다 같이 모이면 그 또한 얘기할 수 있게 된다면 하라고 했다.
이제 볼일 없다고 하는데 막내이모의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그리 쉽게 버릴 순 없을 것 같다.
그 분을 태워드린 후에 발생되어진 남겨진 자들의 잘못된 언행은 풀지 못한 응어리로 얼룩져 나쁜 기억들이 되어 1년에 몇 번씩 찾아올 것이다.
돌아보면 되살아나는 생명력을 지니는 잡초처럼 손이 많이 가게 된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지나가도 때가 되면 되살아나는 것들의 불쾌감은 갈 수록 커져가는 듯 하다.
놓고 가야 할 것과 짐어져야 할 것 그리고, 묻어두야 할 것은 늘 어려운 것 같다.
가끔은 가까운 사람들에 우리는 많은 비수를 드리우며, 마치 당연한 듯 받아주리라 믿고 사는 듯 하다.
때로는 내가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오던 삶이 어느새 습관처럼 고착화 되어 버린것이 아닐까?
아마 그랬던 듯하다.
ps : 기일 하루전(6월 29일 금)에 꿈를 꾸었다고 적어 놓아야 내가 이글을 읽기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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