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울음짓다.
울부짓음은 대화다.
어느날 찡그린 얼굴로 살아가다 미소를 보인다.
울부짓음은 대화다.
어느날 찡그린 얼굴로 살아가다 미소를 보인다.
친구를 알아가고 일상에 젖어 가던 그 해 여름, 나를 이뻐해 주시던 분이 내 곁을 떠났다.
원래 바보이거니와 미련해서 좋은것만 기억하려 했기 때문인지 좋은 추억만 남았다.
그 주신 기억들 중에 세발 자전거, 방패연, 오동나무로 만들어 주셨던 자치기 2세트들 그리고, 사진 속 기억들과 ......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많이들 울었었는데, 나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게 신기해 하는 나를 보며, 어느 내외분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리를 굽혀 내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지금은 그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게 '그 분이 가신걸 아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아냐?'고 물었었다.
그 때 나는 '이제 다시 못 보는 거요'라고 대답했었지만, 내가 아는 수준은 그들이 요구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이었을까?
'이제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아냐'고 물었었고, '그 분 없이도 잘 지내'라며 담백하게 말하곤
'아직은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아' '어린얜데 뭐' 하며 인파속으로 사라지며 하는 얘기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인사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보다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그 뒤 알던 몇몇 분들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듣곤 했었다.
저녁 늦은 밤 즈음에 외삼촌이 목놓아 울부짓는 소리에 사람들이 당황도 하며, 진정시키며 떠드는 모습은 내게 그 날의 기억이 두가지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 후로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 20살이 넘도록 그 곳에 참석하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친척이나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예법이 서툰 난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앵무새가 되곤 했었다.
이방인처럼 담담하게 그리곤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서성거리기만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내게 아픔이 다가 온 후 몇 해가 지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야 비로서 앵무새가 내 몫이 아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그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게 '그 분이 가신걸 아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아냐?'고 물었었다.
그 때 나는 '이제 다시 못 보는 거요'라고 대답했었지만, 내가 아는 수준은 그들이 요구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이었을까?
'이제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아냐'고 물었었고, '그 분 없이도 잘 지내'라며 담백하게 말하곤
'아직은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아' '어린얜데 뭐' 하며 인파속으로 사라지며 하는 얘기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인사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보다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그 뒤 알던 몇몇 분들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듣곤 했었다.
저녁 늦은 밤 즈음에 외삼촌이 목놓아 울부짓는 소리에 사람들이 당황도 하며, 진정시키며 떠드는 모습은 내게 그 날의 기억이 두가지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 후로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 20살이 넘도록 그 곳에 참석하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친척이나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예법이 서툰 난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앵무새가 되곤 했었다.
이방인처럼 담담하게 그리곤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서성거리기만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내게 아픔이 다가 온 후 몇 해가 지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야 비로서 앵무새가 내 몫이 아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먼저 죽지 않았음을 고마워했고, 미안해 했었던 기억이 가슴 한 컨에 남아있었다.
이제 가야 할 때를 기다리는 이들과 담소를 나누다 홀로 남겨질 나를 걱정해 본다.
내가 살아가면서 두번째 기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가 과연 몇 명이나 되려나?
때로는 말하지 않은 짝사랑처럼 늦게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내가 살아가면서 두번째 기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가 과연 몇 명이나 되려나?
때로는 말하지 않은 짝사랑처럼 늦게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진심을 대함이 서툼을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일단 앵무새를 죽이자.
일단 앵무새를 죽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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